|
|
형의 하모니카
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. 무슨 호출 신호인양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어둠속의 계단을 오른다. 지붕 끄트머리에 달려있는 찌그러진 전등갓 밑으로 날벌레들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다. 어스레한 그 불빛 아래 하모니카를 불다간 잠시 팔장을 끼고 무슨 생각에 잠긴뒤 또 다른 노랠 불곤한다. 내겐 하모니카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. 내가 초등학교 사오학년 무렵 부산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동네에서의 추억이다. 내가 살던 집 뒤론 좁은 길이 하나 있고 그 윗집에 살던 동네 형, 형이라기엔 좀 나이가 든 이였다. 하긴 형이라 불러 본 기억도 없다. 그저 우물쭈물 다가가 어줍잖게 인사만 간신히 건넸던 지금 기억으론 대학생 쯤 되는 나이에 말수도 적고 늘 먼 바다를 내려다 보는듯 지긋한 눈길이 어린 내겐 무척이나 멋있어 보였던 사람이었다. 그이의 하모니카는 슬펐다. 알수없는 곡조들이었지만 뭔가 해맑고 수준 높은 슬픔으로 느껴졌다. 지금 생각하면 주로 가곡, 클래식 소품들이었던 것 같다. 내가 물었었다. 무슨 노랩니까? 하고. 돌아온 대답은 '思友'라는 외마디 대답 뿐이었다. '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~' 으로 시작되는 동무생각 혹은 친구생각으로 알려진 곡이라는 것은 그 후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. 그 무렵엔 어디선가 가끔씩 듣게되는 하모니카 곡조는 뽕짝으로 대표되는 우리 가요 일색이었지 싶은데 그 형은 야릇한 곡조로 밤마다 날 이끌어 내었었다. 참 그 곳엔 나와 그 형 말고도 한사람이 더 있었다. 그 형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번번히 희석시키고 마는 여자였다. 어떤 날은 그 여자가 먼저 와 있었고 또 어떤 날은 그 여자가 어둠속에서 스르르 나타나서 나와 형 사이에 쪼그리고 앉기도 했다. 그럴때면 늘 알 수 없는 향긋한 냄새가 나곤 했었다. 어떤 때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하모니카 음률에 맞추어 노랠 하기도 하는 그런 여자였다. 그런 날이면 나는 하릴없이 추녀 끝에 걸린 백열등에 어지럽게 날아드는 날벌레들만 바라보았었다. 난 그 형에게 갈땐 나무 칸막이가 침으로 퉁퉁 불은 하모니카를 주머니에 쑤셔 넣은 채였는데 아마 한번도 그 형 앞에서 꺼내진 못했던 기억이다.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손가락으로 구멍들을 도르륵 도르륵 훑는 짓만 하고 있었다. 지금 내 나이 오십을 훌쩍 넘겼으니 그 형은 아마도 육십은 넘었으리라. 형~ 한번 뵙고 싶습니다. 뵙고 그때 형의 청춘사업을 방해했던 일도 사과드리고 이젠 형 앞에서 한곡 불어 보이고 싶습니다. 2005. 11 |
| 
|
